[스와질란드] 방송, 그리고 그 후에 일어난 변화들
생생 현장일지 2012/05/25 14:19 |아프리카까지 가는 길은 늘 멀고 멀다. 일종의 체념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비행을 시작하지만 늘 길다고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리가 저려서 잠에서 깰 정도로 긴 시간을 날고 날아야 도착하는 그 곳. 거의 만 하루가 걸려 스와질랜드 땅을 밟았다.
스와질랜드로 가는 루트 (SA항공 이용시)
인천 - 홍콩
홍콩 - 요하네스버그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 만지니 (스와질란드)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내려 작은 비행기를 타고 들어가는 스와질란드는 현재 한국대사관도 없고 자동로밍도 되지 않는 작은 아프리카 국가이다. 아무리 처음 들어보는 나라도 로밍은 되는 요즘 같은 시대에 로밍이 안 된다니, 모 통신사에 문의했더니 나라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지 그게 나라이름 맞냐고 자꾸 되묻는다. 잘 안 들리나 싶어 한 글자 씩 반복하자니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아니, 바로 옆에 있는 남아공은 데이터 로밍까지 자유롭게 되는데 스와질란드로 넘어오자 휴대폰은 무용지물이다. 가기 전에 이런저런 검색도 해보았지만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한국인들의 여행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들이 많은 부족들을 한 나라에 품고 있는데 반해 스와질란드는 한 언어를 쓰는 한 부족이 국가를 이룬 흔치 않은 국가다. 적어도 한 국가에서 한 언어로 통일되어 있다니 편한 일이지만 사실 영토는 우리나라의 "도" 하나 정도 크기이므로 그럴만도 하다. 수도에 도착해도 -주로 오지에 위치한-사업장까지 이동만 하루가 걸리는 나라가 허다한데 이번에는 수도도 공항도 사업장도 다 한 두시간 이내에 있었다.
이번 방문을 통해 세 편의 스와질란드 이야기가 방송됐다.
EBS 글로벌 프로젝트 나눔 - 다시보기 클릭! :) 3편 아이들의 생애 첫 선물 |
한국에서 돌아온 후 현지 직원으로부터 사진을 한무더기 받았다. 우리가 만나고 온 아이들의 모습. 우리가 다녀가고 한 달이 지난 즈음이다. 사진으로 다시 만나니 어쩐지 마음이 뭉클하고 울렁거린다. 각 가정을 여러 번 방문해인지 다른 출장 때와 달리 유난히 정이 들어버렸다. 얼굴이 하나하나 익숙하고 사연도 하나하나 익숙한 것이 마음이 더 울렁인다. 무엇보다 뭉클했던 건 이번 방문을 통해 어쨌든 그곳엔 작은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사진에 그대로 담기지 못하지만 아프리카에서 보는 달은 유난히 크다. 마침 보름달이 떠있던 그 날, 낡다못해 무너진 집 탓에 이웃집에서 잠을 청하던 사라 할머니네의 일상을 촬영했다. 특히 우리 모두의 마음을 녹인 건 가족 중 막내, 바로 2편에서 "사랑해"라는 한국말을 선보인 귀염둥이 멜루시다.
<사진: 정진성 작가>
아직 어려서 학교에 다니지 않기 때문에 학교에 간 누나와 형을 기다리며 홀로 놀고 있던 아이. 하동균선생님과 수호선생님으로 부터 "사랑해" "예뻐" "뚱뚱해" 등 다양한 말을 배운 멜루시는 정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모두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방문기간 내에 공사가 끝까지 마무리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방송에서는 거의 지어진 집이 등장했는데 우리가 떠난 후 집은 이렇게 완성되었다.
짓다 말고 방치되어 있던 곳이 이제 번듯한 집이 되었다. 이제 마당에서 줄넘기도 하며 놀 수 있고 이웃집에서 잠을 잘 필요도 없다. 가족에게는 일이 끝나면 돌아갈 예쁜 집이 생겼다.
눈먼 할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던 자매의 최근 모습이다. 팔 다리가 다 떨어져 나가 몸통만 덩그러니 남은 인형을 가지고 놀던 다섯살 싸이닐레. 이 자매에게 선물한 인형은 여전히 아이들 품에 폭 안겨있다. 지구 어디를 가도 아이들은 장난감을 좋아한다.
3편에서 주혈흡충으로 인해 피가 섞인 소변을 보던 남매도 건강을 찾아가고 있다고 이 남매의 사진도 전해받았다. 데카야의 신난 표정이 사랑스럽다. 필요한 건 6주에 한 번 받으러 가야하는 알약이 전부였고. 알약은 무료였다. 다만, 세 번에 걸쳐 수도에 있는 병원까지 찾아가는 게 그 가족에게는 불가능했다.
<사진: 정진성 작가>
심각한 영양실조로 만 두 살, 한국나이로는 3살인데도 걷지 못하던 쌍둥이가 있었다. 아이들의 머리는 마치 백인의 머리카락처럼 노란색이었다. 우리는 아무도 정하지 않았지만 그 집을 "난장판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쌍둥이들은 엉망인 집을, 그 흙바닥을 기어다니고 있었다.
그 쌍둥이의 최근 모습이다. 이건 5월11일에 찍힌 사진인데 5월 14일에는 다시 클리닉을 방문했다고 한다. 더 좋아졌다는 소식이 현지 직원에게서 전해들었다. 이 사진만 봐도 나아진 걸 알 수 있다. 그렇게 샛노랗던 머리가 한달도 안 되어 제법 짙어진 게 보인다.
촬영 당시, 이동하던 중 작은 다리를 건너다 급히 차를 세웠다. 아이들이 한쪽에서는 물놀이를 하고 한쪽에서는 물을 긷는 중이었다. 멀리서 내려다봐도 깨끗하지 않은 물에 가슴이 철렁하는데.... 몇 걸음 옮기자 보이는 건 물놀이하는 아이들과 물긷는 아이들 사이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아주머니들. 물을 긷는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있었다. 물어보니 그 물로 요리하고 끓이지 않고 그냥 마시는 물로도 쓰고 몸도 씻는다고 한다. 주혈흡충은 더러운 물에 피부로도 전염될 수 있는 병이지만 아이들은 무방비상태다. 자기 몸통만한 물통을 어깨가 삐뚤어지도록 들고 물에서 나오는 아이들을 보니 그 열심인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마침 지나가는 소떼는 무심하게 물을 들이키더니 아무렇지 않게 줄지어 강을 건넌다. "아이고"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물을 긷고, 빨래를 하고, 낚시도 하고, 몸도 씻는데... 소떼가 함께한다.
<사진설명: 우리가 선물했던 노트와 연필로 공부하고 있는 NCP(취약아동지원센터) 아이들>
일을 하다보면 이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뭐가 변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하는 일들이 발버둥에 불과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들대로의 삶을 살아가게 둬야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런데 이 작은 변화들을 목격하며 다시금 생각한다. 이 작은 변화들로 인해 분명 누군가가 이렇게 살아나고 있다는 건 사실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는 것.
<사진설명: 건물이 없던 NCP(취약아동지원센터)는 현재 월드비전의 지원으로 지을 준비에 착수했다>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하동균, 수호씨로부터 후원자 등록을 해달라는 메일이 왔다. 살면서 하는 경험 중에 꼭 한 번 해보면 좋은 참으로 귀한 것이 있다. 어려운 이들에게서 단순히 위로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삶에 마음으로 다가가 보는 것. 나와 같은 마음을 그들로부터 읽어보는 것. 그들의 마음으로 노래해 볼 수 있었다는 걸 생각하면 하동균, 수호씨가 부럽기도 하다.
이 사진과 함께 똠삐의 스케치북이 벌써 많은 그림으로 차있더라는 직원의 말을 들었다. 몸의 장애 때문에 기가 죽었을까? 처음 만났을 때는 한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었을 뿐이지만, 우리가 아이들 틈에서 그녀를 주목하고 찾아가고 마음을 전하자 점점 자신감을 찾아가던 소녀.
<사진: 정진성 작가>
한 아동의 후원자가 된다는 것은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많은 후원자분들은 이제 이유를 잘 이해하고 계시지만, 여전히 해외아동후원을 하는 후원금이 지역개발사업에 쓰이는 것에 대한 문의를 종종 받는다. 아동의 바른 성장은 신체적 성장만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의 후원금이 아동의 삶과 그 아동이 살고 있는 나라를 송두리째 바꾸지는 못한다. 기본적인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을 도울 뿐이다. 하지만 우리의 편지와 응원은 그 환경에서도 매일을 살고 자라나야하는 아동에게 에너지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언제 다시 스와질란드 땅을 밟아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지구 반바퀴를 돌아 만나는 인연이 얼마나 굉장한 운명이고 인연인가. 부디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자라나길 기도한다. 멜루시가 다 자라도록 "사랑해"라는 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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