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비전, 에티오피아의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돕다.
생생 현장일지 2012/03/26 16:08 |
월드비전 충북지부와 청주방송, 동양일보, 그리고 충청북도 교육청 관계자들과 함께 지난 2012년 2월 19일부터 25일까지 일정으로 '제2차 에티오피아 한국전쟁 참전용사회 소득증대 건물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지어지는 건물 기공식에 참가하기 위해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 위치한 굴렐레 도시빈민 지역개발사업장을 방문했습니다. 월드비전 친선대사인 김혜자씨가 에티오피아를 방문하면 항상 찾는 유치원도 있는 지역입니다.
에티오피아는 한국 월드비전이 1991년 원조를 받는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이 되면서 가장 먼저 해외사업을 시작한 나라들 중 하나인 국가이기도 하고, 한국 월드비전이 해외사업을 수행하는 나라 중 제일 큰 규모의 사업이 진행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아프리카 국가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나라이기도 합니다.
한국 월드비전이 아디스아바바에 에티오피아의 한국전 참전 용사들을 위한 소득증대 건물지원사업을 한다 하니, 어린아이들에 주로 중점을 두고 일을 하는 월드비전이 이런 사업을 하는것에 대해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이런 사업을 하게 됐는지, 국제개발팀에서 에티오피아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허디모데'씨를 만나 들은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시삽식>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야기를 하자면 잠시 역사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모두가 알고있다시피,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이 발발합니다. 당시 유엔군이 우리나라를 많이 도와줬었습니다. 그 유엔군의 모습으로 파병하여 우리나라를 도와준 나라 중 에티오피아도 있었습니다. 당시만해도 대한민국은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동양의 아주 작은 나라에 불과했습니다. 마치 지금 우리가 잘 모르는 제 3세계의 국가들 처럼요. 이런 작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전쟁이 났다고 해서 누가 자기 나라의 군인들을 보내주겠습니까. 그리고 자기 나라의 소중한 청년들을 다른나라 전쟁에 쉽게 파병할 나라는 흔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웃 나라를 도울 수 있으려면 그 나라의 경제력이 어느정도 뒷 받침 되어야 합니다. 그 때의 에티오피아는 한 번도 다른 나라의 식민지배를 받은 적도 없었고, 또한 잘 사는 나라에 속한 부국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에티오피아는 살라시에 (Haile Selassie) 황제가 나라를 잘 이끌고 있어 정치적으로도 안정적인 상태였습니다. 유엔군으로 파병했던 에티오피아 군인들 또한 훈련이 아주 잘 된 군인들 이었다고 합니다. 황제의 근위대 (Emparial Guard), 우리나라로 치면, 육사생도정도의 군인들 6천명정도를 파병하여 122명의 전사자와 536명의 부상자를 냈지만, 참가한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는 기록을 남기며 용맹스러운 부대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이 용맹스런 군인들이 전쟁이 끝난후 에티오피아로 돌아왔을때 살라시에 황제가 수고했다하고 이들의 노고를 인정하여, 군인으로 남고 싶은자는 남도록, 전역하고 싶은 사람은 전역하도록 해주고, 이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어 전역후에도 경제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또 이들은 사회적으로도 인정받았습니다.
<참전 기념관>
그런데 갑자기 1974년 공산쿠테타가 일어나, 당시까지의 군주제가 몰락하고, 한국과 관계가 안좋아 졌습니다. 한편 같은 공산주의 이념을 가지고 있는 북한과는 관계가 지속적으로 좋아져 매우 돈독한 관계가 되어버리기에 이릅니다. 양국은 교류를 늘려가며 서로 군사적으로 도움을 주고 받기도 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회가 변하면서 북한을 대적해서 싸웠던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점점 푸대점을 받기에 이르렀고, 심지어 감옥에 갇히고 탄압받고, 테러당하고, 쫓겨나는등의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아디스아바바의 코리아타운에서 사회적으로 존경받으며 안정적으로 살던 참전용사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숨어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다시 바뀌어, 1991년 공산정권이 몰락한 후에도, 사실 우리나라의 에티오피아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습니다. 어찌보면 한국전 당시 그리도 헌신적이고 용맹스럽게 우리나라를 도와준 에티오피아를 공산정권이 무너진 후의 90년대 초중반부터 관심을 갖고 도와주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참전 기념탑 헌화>
이러다가 96년도정도 부터 에티오피아를 기억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이끌었던 사람중 한 명이 동양일보 조철호 회장입니다. 당시에 접근하기 힘들었던 에티오피아를 직접 방문하여 "한국은 우리를 잊었지만, 우리는 한국을 잊지 않았습니다"와 같은 특별기사를 내고, 충청도지역에서 에티오피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모금도 하였습니다.
동양일보는 96년 97년 부터 현재까지 십수년동안 에티오피아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가지고 월드비전과 함께 에티오피아의 아동들은 물론이고, 지역사회를 돕고 참전용사들에 대한 은혜를 갚고자 도자기공장건축, 학교건축등, 다양한 방법으로 월드비전과 함께 일해왔습니다. 이런 도움을 주던 중에, 이렇게 찔끔찔끔 돕지 말고, 현실적으로 그들의 삶가운데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도움을 주자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런 생각을 기반으로 참전용사 임대건물 사업을 구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2007년도에 참전용사들을 돕기위해 4층짜리 건물을 지어주어 임대수익금으로 참전용사들의 어려움을 돕는데 사용하도록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잘 운영이 되고 있지만, 많은 참전용사들의 수에 비해, 나오는 수익이 적은터라, 도움이 되기에는 약간 부족한 상황입니다. 일년에 한 사람당 100불정도의 도움을 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에티오피아 일년 GNP가 400불 조금 넘으니, 그래도 아주 적은 액수는 아니지만, 에티오피아 경제가 일어나면서 날이 다르게 오르는 물가 등, 현실 상황을 고려했을때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2008년에 준공한 첫 번째 임대사업장 내외관>
이 사업은 이렇게 시작이 되기까지는 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에티오피아 월드비전에서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사업진행에 대한 답이 오지 않았었습니다. 그래서 이유가 뭔가 알아보니, 에티오피아 지도층이 설득이 안되고 있었던 겁니다. 에티오피아는 1991년도에 공산정권이 몰락했지만, 북한이랑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사회주의 성향이 강한 내각을 구성하고 있는 에티오피아이기 때문에, 북한하고의 관계가 아직도 굉장히 좋습니다. 이런 이유로 한국 정부차원에서의 지원이 좀 껄끄러울 수 도 있다고 봅니다. 또 월드비전은 어린이들을 위한 기관인데, 왜 월드비전이 아디스아바바에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를 돕는데 관여하냐는 것입니다. 한국 월드비전과 동양일보가 아동들과 지역사회를 위해 지난 십수년동안 많은 기여를 한 것을 상기시키며 한국의 참전용사를 돕고자 하는 정서를 이해해 달라고 설득했습니다. 또한 이런 일들로 한국의 에티오피아에 대한 관심을 끌게되면 그것이 결국 에티오피아 어린이들을 돕는 사업으로 이어질 수 도 있다라고 설득했습니다.
<마사이족 아이들>
또 에티오피아의 어떤 주민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한국에서 대통령이 왔다 갔는데, 신문에도 나고 방송에도 나고 했는데, 실질적으로 삶에서 체감할 수 있는 어떤 도움도 느끼지 못했다. 마을회관 같은 곳에 걸어두는 LCD 모니터 몇 개 받았다."
또 한국에 초청받아 왔던 어떤 참전용사는 말하길,
"한 번 비지니스 비행기타고 한국에 와서 특급호텔에서 재워주고, 비싼음식주고, 사진찍고, 한국 사람들이 에티오피아 방문하면 참전용사 찾아서 선물도 주고, 돈도 조금 쥐어주고, 비싼 술도 먹여주고, 그런 것들이 좋긴 좋은데, 속으로는 이걸 돈으로 주면, 내가 평생 생활비 걱정 없이 살 수 있는데, 차라리 돈으로 주지, 라는 말이 목구먹 까지 나왔다가 자존심때문에 말은 하지 못했다. 사실 그런거 그렇게 주는 사람은 순간 좋고 본인이 그래도 이렇게 도왔다라는 감정에 본인 스스로의 만족감은 채울 수 있겠지만, 그 사람들이 그렇게 가고나면 남는게 하나도 없고 더 허탈할 뿐이다."
또 다른 어떤 분은,
"사진찍으러 오는 사람이 너무 많다. 제복입고 경례해주고 하면 너무 좋아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가면 남는건 하나도 없다. 실질적으로 우리를 도와주는 단체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가 맡은 역할이, 우리가 하는 이 사업이 굉장히 중요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월드비전은 다르다!" 이렇게 큰소리 치고 왔습니다. "한국 월드비전은 다르다!" 라고 말하며 진심으로 그들의 맘을 위로할 수 있는, 현실적으로 그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사업을 펼쳐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양해각서 체결>
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용사회랑 에티오피아 월드비전과 양해각서를 맺었습니다. 건물 건축이 시작되기 전 기공식도 했습니다. 건축이 완료되고 임대사업이 시작되면 차후에 월드비전이 투명하게 관리가 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그들의 삶에, 마을에, 그리고 또 아이들의 삶에 변화가 찾아 올 수 있도록 그들과 함께 일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에티오피아를 사랑해주시는 파트너 동양일보와 청주방송, 충청북도 교육청에 감사드립니다.
월드비전 홈페이지에 에티오피아 사업담당자 허디모데씨가 직접 쓴 에티오피아 하브로 출장기
추신:
에티오피아와 같은 동아프리카, 조금 남쪽으로 내려가면 말라위가 있습니다.
말라위의 쳇사(Tchesa)지역은 말라리아로 인한 타격이 큰 지역으로,
월드비전이 지원하는 말라위 사업장 중에서 2010년 말라리아로 사망한
결연 아동이 가장 많았습니다. 모기장(2만원)을 선물하고 싶으시면 클릭하세요.
글&정리: 홍보팀 이현수
사진&정보&협조: 국제개발팀 허디모데
후원관리팀 한예은
후원관리팀 한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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